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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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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책을 읽는다.
 
자투리 시간만으로도 얼마든지 충분한 독서가 가능하다.
강준만 지음, 《지성인을 위한 교양브런치》, 인물과사상사, 2008.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이민규 교수는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에서 자투리 시간을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 다섯 가지가 하루 일과 중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대표적인 자투리 시간임에는 누구나 동감할 것 같다.
 
① 동료들과 잡담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로 통화하는 시간
② 식당이나 은행 또는 병원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
③ 세면이나 목욕을 할 때, 또는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
④ 아침에 일어나서 뒤척거리거나 뭔가 마시고 먹는 시간
⑤ 일터로 나오거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자투리’란 자로 재어 팔거나 재단하다가 남은 천의 조각, 혹은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거나 적은 조각을 말한다. 이처럼 조금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이 자투리가 독서 시간에 적용될 때는 도리어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독서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진 사람은 도리어 독서가로서는 자격상실자다. 독서할 시간이 부족해 간절한 마음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만이 진정 짜릿한 독서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이민규 교수가 정리한 다섯 가지 자투리 시간에 짬짬이 독서 삼매경에 빠짐으로써 지성인으로 성장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독서 초심자들은 물론이고 독서의 고수들도 5분에서 10분 정도면 한 꼭지를 읽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 비록 짧은 호흡의 글들을 모아 놓아 성의 없어 보이지만, 실은 내용적으로 충실하고 진지한 사색을 유발하여 독자들의 지성과 감성을 고양시켜 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양서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익한 상식사전이나 365일 명언집, 짧지만 의미심장한 에세이 모음집이나 시집 등도 잘만 고른다면, 무심코 잃어버렸던 자투리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소중한 보물 조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독서할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독서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자투리 시간을 독서 시간으로 활용하는 일이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일 치고 쉽게 되는 법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점은 실제로 자투리 시간 외에 독서할 시간은 없다는 사실이다. 제아무리 독서의 고수라 해도 그들은 독서할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투리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독서하는 사람일 뿐이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자투리 시간 활용의 차이, 그 이상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화두를 놓고 읽을 첫 번째 책이니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선택하자 마음먹고, 자투리 시간을 보물조각으로 만들어 줄 미다스의 손을 찾아 대형 서점을 몇 시간이고 배회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지성인을 위한 교양 브런치》를 발견한 순간 마침내 발길이 멈췄다. 전북대 학생들이 창간한 인터넷신문 <선샤인뉴스>(www.snshinenews.co.kr)에 정윤성 화백의 그림과 함께 연재했던 ‘선샤인 명언’을 묶어 낸 이 책의 뒤표지에는 매우 인상적인 글이 실려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글은 이 책 속의 한 꼭지였다.
 
▶모든 타이틀을 다 떼어내고 난 후에도 ‘나’는 과연 ‘나’일까? -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인 마이크 모리슨이 던진 질문입니다. 당신의 타이틀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명함에 적혀 있겠지요. 명함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두 개의 타이틀은 갖고 있을 겁니다. 이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타이틀에 집착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좋은 타이틀을 얻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투쟁하시되, 한 번쯤은 자문자답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모든 타이틀을 다 떼어내고 난 후에도 ‘나’는 과연 ‘나’일까?
 
익히 아는 작가의 책인 데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화두에 적절하다 생각되어 본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신문방송학 교수이자 전문적인 대중문화 비평가로서 ‘학문 신비주의’에 갇혀 있던 지식을 광장으로 불러와 대중적으로 이슈화하는 일에 수십 년을 바쳐 온 강준만 교수. 그가 제목부터 다소 감각적인 처세서를 썼다. 지성인을 위한 교양 브런치? 웃음이 피식 나왔다.
일단 황당한 일이었지만, 머리말의 결론 부분에 적힌 “우리는 처세술에서 이기주의의 냄새만을 맡는 기존 습속에서 벗어나 앞 다투어 ‘공공적 처세술’의 영역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는 이 책의 집필 의도는 강준만식 문법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소개된 150꼭지의 명언과 해설 역시 강준만 교수 특유의 촌철살인적 면모를 갖고 있었다.
《지성인을 위한 교양 브런치》는 한 꼭지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2분을 채 넘지 않는다. 따라서 이민규 교수가 정리한 다섯 가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읽는 데 아무 무리가 없는 책이다. 또한 인터넷신문에 기고한 글인 관계로, 강준만 교수의 다른 책들과 같은 형식적 엄격함이나 구성상의 치밀함도 없으니, 부담 없이 읽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총 150꼭지 중 막 읽어도 될 만큼 별 내용 없는 꼭지는 단 하나도 없으니 쉽게 얕볼 만한 책이 아님을 충고해 주고 싶다.
“독서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경험도 사색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한 경험과 사색의 관계는 음식물을 먹는 입과 이를 소화시키는 위장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이 명언을 소개하면서, ‘생각하는 독서’의 중요함을 역설하는 짧은 해설을 곁들인 꼭지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자투리 시간이라 할지라도 건성건성 읽는 독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색의 재료를 얻기 위해 책을 사고 읽는 것이다. 독서란 본래 그렇다. 《지성인을 위한 교양 브런치》는 자투리 시간에 읽기 좋은 책일 뿐 아니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새로운 사색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책이기도 하다.
《지성인을 위한 교양 브런치》의 가장 큰 매력은 ‘부담 가는’ 명언을 ‘부담 없이’ 읽는 재미와 유익함이다. 사색의 재료를 주긴 하지만 독자들에게 즐거운 사색 이상을 넘어서게끔 압박하지는 않는다. 물론 ‘부담 가는’ 명언은 사실 ‘부담을 갖고’ 읽어야 그 깊이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담 없이’ 읽는 재미의 가치가 떨어지진 않는다.
독서도 좀 엄숙주의의 굴레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괜한 격식에서 벗어나 허물없이 책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책과 편히 대화하며 농담을 주고받으려는 소탈한 독자도 소중한 독자다. 아니 어쩌면 이 복잡하고 긴장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독자야말로 오히려 생존력 있는 독자가 아닐까?
 
바야흐로 요즘은 브런치 문화가 대세다. 공연장에서는 감미로운 브런치 콘서트가 열리고, 빌딩숲 사이로는 브런치 카페가 손님들을 기다리며, 강연장에서는 브런치 강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그저 일과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먹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간의 여유를 즐기며 충분한 맛과 영양을 섭취하는 브런치가 교양과 만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일과 일 사이에 끼인 이도저도 아닌 시간이 아니라 일과 일 사이에 주어진 황금 같은 독서 시간으로 자투리 시간에 대한 인식이 전환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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